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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apple)나무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1/12/24 [16:04]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인류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준 사과가 4개쯤 된다. ①아담과 하와를 타락케 만든 선악과(Adm’s apple/창3:3). ②만유인력을 발견하게 도와준 아이작 뉴튼의 사과 ③스위스에서 정치적 혁명의 도화선이 된 윌리엄 텔의 사과 ④스티브 잡스의 컴퓨터 상징도안의 사과가 있다. 당뇨병 증세가 있는 사람에겐 도마도만 먹으라고 하다가 하루 사과 반쪽까지는 괜찮다는 의사의 식이요법 지도가 뒤따르기도 한다.

 

이 과일은 480여년전 ‘능금’으로 불리다가 350년전부터는 ‘사과’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임금(林檎)이라 부르다가 발음상 ‘능금’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과 한국에선 작은 열매의 자생식물이었다. 일본에서도 ‘링고’(林檎)라 하는 작은 열매였다. ‘능금’이란 기록은 고려시대 속요 「처용가」(處容歌)에 ‘미자’라는 말로 기록돼있다. 야생종 능금이었다. 또 송(宋)나라 사신 손목(孫穆)이 고려말 사신으로 왔다가 편찬한 「계림유사」에는 능금을 민자부(悶子訃/머자배)라고 불렀다. 손목은 고려 숙종8년(1103년)에 서장관으로서 사신을 수행하여 고려에 왔는데 당시 고려의 조제(朝制) 토풍(土風) 구선(口宣) 각석(刻石) 등 고려말 360여개를 채록해 「계림유사」 3권으로 분류편찬한 사람이다. 조선 전기의 여러 문헌에서도 능금에 관한 기록이 발견된다. 최세진(崔世珍)의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서는 빈파과(頻婆果)를 ‘굵은 능금’이라 적었고 그 외에 상사과(相思果)와 사과(沙果)라는 명칭도 있다.

 

최세진이 쓴 다른 책 「훈몽자회」에서는 금(檎)을 속칭 사과(沙果)라고 부르며 조그만 능금을 화홍(花紅)으로 부른다고 적고 있다. 「훈몽자회」는 1527년(중종22년)에 출간되었으므로 이때부터 능금, 사과란 말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 조선초기에 원(元), 명(明)과 문화적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임금’이란 어휘가 들어왔고 왕의 칭호와 비슷하여 ‘능금’으로 고쳐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리 한반도에서 사과나무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훨씬 뒤로써 17세기쯤 조선의 사신이 중국에서 사과나무 묘목을 들여오면서부터다. 순조 재위중에 나온 유초환(俞初煥)의 「남강만록」(南岡漫錄)에 자세하게 기록돼있다. “사과(査果)는 능금과 같으나 크기가 몇배이고 또한 맛이 담담하고 달아서 쓰고 떫은맛이 없었다. 효종 갑오, 을미년에 인평대군(麟坪大君)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 나무를 얻어 수레에 싣고 왔다. 장차 열매 맺으면 궁궐에 바치려고 했다. 무술년(1658년)에 인평대군이 죽고 을해년에 효종도 돌아가셨다. 경자년(1660)에 이르러 열매가 맺자 인평대군의 자녀들이 이를 바치니 현종이 종묘다례에 올리도록 명했다. 사람들은 모두 한번 먹어보고 싶었으나 그 열매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 과일은 일명 빙과(氷果)라고도 부른다”고 써있다. 효종 갑오년은 1654년이요 을미년은 1655년이다. 인평대군은 중국에 4번이나 사신으로 갔는데 두 번째 갔을 때 사과나무를 얻어온 것이다. 개량종 사과는 당시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재래종 능금보다 더 컸고 단맛도 좋아 당시에 모두 부러워했던 과일나무였다.

 

순조시대에 한필교(韓弼敎)일행이 사신으로 중국을 오가면서 편찬한 「수사록」(隨傞錄/1831)이 있다. 거기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빈과는 오늘날 사과라고 부른다. 우리 해동에는 예부터 이름이 없었다. 효종부마인 동평위 정재륜이 중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 묘목을 얻어와 비로소 나라안에 퍼져나갔다.” 정재륜이 가져온 사과나무는 빈과계통의 새로운 품종인 것 같다.

 

순조시대 즉 19세기 초반에 유초한과 한필교 모두 한반도에 사과나무가 널리 재배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884년부터는 외국선교사들을 통해 지방에 몇그루씩 보급되었으나 대부분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는데 1901년에 윤병수(尹秉秀)가 미국 선교사를 통해 많은 사과나무 묘목을 들여와 원산 부근에 사과나무 과수원을 만들어 경제적인 재배가 시작 되었다. 대구사과가 유명했는데 지금은 기후의 변화에따라 충주사과를 거쳐 강원도와 황해도까지 재배지역이 북상하고 있다. 대신 남쪽지방에는 아열대 과일인 망고나 파인애플이 재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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